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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다움의 소소한일상

봉선화, 고향의 봄의 노래를 느낄 수 있었던 '홍난파 가옥'

by 더예다움 2012. 12. 24.

 

 

                                                             < 홍난파 가옥 >

 

어제는 서울 강북삼성병원에 갈 일이 있어 사직터널쪽에서 강북삼성병원으로 골목을 따라 가던 중 길 왼쪽에 ‘홍난파 가옥’이라는 안내표시가 있어 한번 들러보았죠.

 

마침 가옥 안에는 가옥 관리자겸 해설사가 계서 홍난파 선생님과 홍난파 가옥에 대해 설명을 잘 들을 수 있었지요.

 

‘홍난파 가옥’은 서울 종로구 홍파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국 근대 음악의 선구자 홍난파 선생님이 1935년부터 1941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던 집이라고 하네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봉선화′, ′고향의 봄′ 등을 작곡한 홍난파 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이 주택은 1930년에 독일 선교사가 지은 벽돌조 서양식 건물로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고 그의 대표곡들이 작곡된 산실이므로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될 가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홍난파 선생님은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이며 본명은 홍영후로서, 43세(1898. 4.10~1941.8.30)의 짧은 생애를 살았으나 당시의 한국 음악인으로서는 대단히 다양한 예술활동을 벌였다고 합니다.

 

일제 시대에 널리 불려졌던 가곡 <봉선화>를 작곡하고, <성불사의 밤> <고향의 봄> <옛동산에 올라> <낮에 나온 반달> <봄노래> 등은 모두 민족적 정서와 애수가 담긴 작품들이죠.

 

아래 사진은 밖에서 본 '홍난파 가옥'의 외부 모습입니다.

 

 

 

 

 

 

 

'홍난파 가옥'의 이 건물은 지상 1층, 지하 1층의 규모로 붉은 벽돌조로, 가파른 경사지를 이용하여 남쪽에 현관과 거실, 침실을 두고 북서쪽에 지하층을 두었으며, 서쪽의 길에서 대문을 통하여 마당 안으로 올라오면 계단을 따라 현관에 다다르게 되죠.

현관문은 정교하게 디자인 되어 있으나 다른 서양사람들의 주택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관주변시설이 따로 없고, 지붕은 다른 지역의 선교사 주택보다는 경사면이 더 가파른데, 북 유럽의 주택문화가 반영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하네요.

 

 

 

홍난파 가옥의 실내는 1930년대 서양인 주택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데, 거실의 벽난로벽난로는 붉은 벽돌로 치장 쌓기를 하였고, 거실바닥은 보통 벽돌만한 크기의 나무토막을 사용하여 쐐기문양을 내어서 마감하였다고 하네요.

실내에는 홍난파 선생님과 관련된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해설사님의 친절한 설명으로 선생님에 대해 조금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답니다.^^

 

 

 

 

 

 

 

 

 

 

 

홍난파 가옥은 등록문화재 제90호(2004년 9월 4일 지정)로 지정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건축 디자인과 함께 홍난파의 삶과 흔적이 담긴 다양한 전시를 볼 수 있었고, 가옥 앞에서 소규모 공연도 한다고 하네요. 

 

이용시간은 하절기(4~10월) 11:00~17:00, 동절기(11~3월) 11:00~16:00 입니다.